삶의 의미를 묻는 세속의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나우웬의 메세지.
그러나 그들이 알고 우리가 아는 정관사"the"로 공유할 수 없는 공간으로 다소 의도에 벗어난 글이다.
세속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전제한 글이기에
세속의 사람들보다는 하나님을 알고 찾는 우리에게 더욱 의미심장한 이야기로 들려온다.

윤철호교수님의 표현대로라면 직설법과 명령법의 긴장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사랑받는 자인 동시에 사랑해야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부터 갖게된는 정체성은 그분의 하늘같은 사랑을 받은 자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속삭임에 나를 팔아 낮은 자존감으로 살아가는데 익숙하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여정은 하나님의 소리,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듣는데서 시작된다.
이 소리를 듣는 자는 이미 하나님께 붙잡힌(taken) 자임을 전제한다. 우리의 여정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긍정하는 축복하는 자로 나아가게 한다.
또한 고통은 우리의 참된 인간됨을 형성하는 일면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이러한 고통을 통해 그분의 낮은 목소리를 듣는 것을 포함한다.
크고작은 상처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인간됨을 구성하는 한측면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상처와 고통을 하나님과 이야기할 수 있는 희망으로 여기느냐, 절망의 시작으로 여기느냐라는 선택앞에 우리는 노출되어 있다.
상처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소유를 주장하는 내면의 소리를 누르며 삶으로, 혹은 죽음으로 나누는 삶으로 초청한다.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이지만 사랑받는 자가 되기위해서 우리는 부단한 훈련이 필요함을 그는 이야기한다.
신비주의적인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여정은 부단한 자기 훈련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종종 빠지는 영성의 유혹은 훈련없는 카리스마를 구하는데서 있지 않나 생각한다.
많은 묵상가운데 빚어진 글이라서 돋보이는 표현과 구체적인 적용이 여러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앞에 "네, 그렇습니다"하고 긍정할 수 있는 기회요 선물이다.
삶의 끊임없는 고비와 고통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네, 그렇습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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