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발간되었던 소책자를 묶어 편집하고 마지막 주제는 잡지에서 가졌던 인터뷰를 각색해서 편집한 유작이다. 의미를 두지 않고 짧게 읽기 좋아 택한 책인데 우연찮게 지난 금요일에 보았던 "집으로 가는 길"(The road home)과 모종의 연관을 발견한다.

능력의 길, 평안의 길, 기다림의 길, 삶과 죽음의 길을 주제로 풀어놓는 나우웬의 생각들이 영성이라는 큰주제로 하나가 된다. 영성은 언제부터인가 현대인의 패러다임을 읽는 코드가 되어 눈앞에 있다.
그러나 나우웬의 영성은 현대인의 맘에 위안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 근거하여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차별된다.

권력(power)이 진정한 능력(power)으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우리 실존이 가지는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소유에 집착하고 결국 그것을 우리를 파괴하는 권력을 창출한다. 예수의 삶을 통해 드러난 능력(power)은 이러한 두려움을 인정하고 상실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한다. 또한 철저하게 무력하다. 무력함으로 하나가 되게 한다. 무력한 모습때문에 그의 죽음후에 제자들이 함께 했고 지금까지 그분을 주로 고백하는 우리가 있다.

평안의 길은 "아담"에서 이미 이야기한 예수의 삶에 관한 요약이다. 아담을 통해 본 평안은 그가 정신지체아로서 가져야 했던 상실감을 통해 오는 그의 존재자체로서의 평안이었고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그의 마음에 기초한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놓음에서 시작되는 평안, 관계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는 마음, 그 평안에서 오는 공동체로 세움받음이 평안의 길이라 한다. 이 평안의 주체가 예수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믿음가운데 이 길을 걸어야 한다.
내것을 놓았는데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하여 비관하고 "이 모든 것으로부터 물러나 우리 자신을 개인적인 생존이라는, 좀더 쉬운 역할로 제한시키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사단의 유혹이다" 그의 목소리는 이처럼 단호하다.

기다림의 길에 관하여 그는 하나님에 대한 기다림과 하나님의 기다림을 이야기 한다.
우리가 그분으로 부터 얻은 약속에 근거한 기다림은 일상적인 경험과 달리 능동적이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그 기다림이 소망이 아닌 우리의 소원(wish)이 투사된 기다림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미래 통제 방식 이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망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우리의 상상을 넘는 무엇인가를 이룰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이러한 기다림은 우리의 삶의 통제권을 내가 아니라 그분께 내어드림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예수의 수난의 철저한 수동성에 근거한다.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그분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다. 인간 실존의 삶의 자리가 철저하게 통제할 수 없는 수동성에 지배아래 있음을 그분은 보여주셨고 수난을 통해 기다림 속에 임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신다. "언제나 행동하는 쪽으로 돌아가려 애쓰지 않고 오히려 수난과 기다림 가운데서 우리의 가장 깊은 인간성이 실현됨을 의식하는 사람"을 보여주신다.

삶과 죽음의 길은 죽음을 준비하면서 죽음이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어떠한 열매를 맺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이를 준비하라 촉구하는 이야기이다. 죽음을 외면하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이미 하이데거부터 많은 실존철학자들이 지적한 바 있다. 나우웬 역시 이 예정된 실존방식을 부정하지 말고 정면으로 뚫고 사랑받는 존재로서 우리가 그분에게 받은 사랑을 보여주고 구현하라고 주신 잠깐의 시간을 인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라고 한다. 죽음은 영원으로 가는 출애굽이다. 물론 슬픔이 있지만 예수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열매를 맺게 하는 힘이 있다. 그 열매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

영성의 길이란 결국 나의 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물방울에 불과한 내가 대양에 섞이는 경험이다.
안식이란 그곳에 있다.

그래서 "기다림이란 우리가 현재 있는 곳과 우리가 있고 싶어하는 곳 사이에 있는 메마른 사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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