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써보려고 제목을 단 건 아니고, 다만 중간고사를 진행하면서, 고3때도 하지 않던 밤샘을 해가며 페이퍼를 쓰다가 갑작스레 지금의 느낌을 남겨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학기 듣는 대부분의 과목은 신약이고 유대교사가 변칙이라면 변칙인데, 이번학기를 반 쯤 보내고 나서의 느낌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들었던 수업이, 또 읽었던 책들이 너무 유대적 배경에서만 신약을 읽었다는 것이다.
유대의 역사를 조금만 알아도 1세기 지중해는 BC 3세기부터 본격화된 헬레니즘적 영향과 1세기로 시작된 로마의 통치로 인해 자국의 전통이라 할 만한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그나마 유대 땅은 야훼 유일신 사상과 성전 중심의 정체성을 고수하였고 하스몬 가의 잠깐의 통치로 유대적 전통을 강화하였다고는 하나 이 기간의 유대적 전통은 이미 헬라화 된 전통일 수 밖에 없다.

3세기가 지나서 까지 헬라어가 공용의 언어였으니 헬라어에 얹혀진 그들의 문화가 자국의 언어로 담아왔던 그것일리 없겠고, 별 것 아니라고 하나 헬라의 대기 속에서 수세기를 거치면서 과연 무엇을 "유대"적이라 할 수 있을까?

신약 성서가 기록된 1세기, 2세기 초의 정황을 떠올리면 그레코 로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순수 유대의 영향권을 전제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알게된다. 따라서 신약은 유대적 영향만 고려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반드시 그레코 로만의 대기를 고려한 읽기여야 한다. 아울러 근대적 발상에 근거한 고대 작가들의 능력에 대한 폄하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할 요소이다.

우리는 1세기 유대 땅과 지중해 연안에 살았던 사람들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네 삶이 복잡하고 치열한 만큼 신화의 세계에 살았던 그들도 복잡하고 힘든 삶을 살았다.
1세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신화 속에서 살았다고는 하나 우리는 그들의 신화의 세계와 다른 현대적 신화 속에서 살고 있음을 어찌 부인할 수 있는가?
그들은 성전 문 앞에 기록된 안내를 읽을 만큼 헬라어를 구사할 줄 알았고 조상으로부터 전해 받은 히브리어, 아람어로 성서를 읽을 줄 알았다.

이제 배운 것들, 읽은 것들, 생각한 것들을 종합해서 읽어야 하는데, 종합은 쉽지 않고 파편들이 머리 속에 유영하니 시간을 갖고 하나씩 하나씩 맞춰 큰 그림을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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