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이런 빼빼로 데이군.
아들들의 악머구리로 엄마가 그로기가 되었을 즈음, 저녁 식탁을 차리다가 김치통이 깨지면서 아내가 새끼 손가락을 베었다. 이걸 베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cut은 아니고 avulsion이란다.
살이 떨어져 나간거다. 음...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상처를 보고 있노라니 병원을 가야하겠는데, 저녁이라서 응급실을 가면 천문학적인 숫자의 병원비가 청구될 것은 뻔했다. 옆집 목사님께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확언을 해주셔서 그분의 10여년의 미국경험을 믿고 병원을 찾았다.

제아무리 병원비가 나온다한들 사람 아픈데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이 생각만 하고 병원에 도착해서 4시간 걸려 치료받고 나오니 여기저기서 걱정의 소리가 들려왔다.
7000불, 8000불, 10000불...
맥시멈으로 2000불을 생각하고 있던 내게는 살 떨리는 무서운 금액의 돈이다.

한결 마음을 편하게 한 것은 그래도 미국이라는 소리, 사회복지사를 통해서 일을 해결하자는 의견이었다.
아직 만나보지도 못했고 정확한 청구서를 받지는 못했지만 사회복지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 정상참작이 된다고 하니 억지로라도 편하게 마음 먹으려 한다.

6시간 마다 찾아드는 고통에 진통제를 먹는 아내도 안쓰럽고 그 약을 먹은 엄마 젖을 빨고 같이 헤롱거리는 둘째도 측은하다. 찬빈이는 지난 번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아픈 엄마에게 전혀 떼 쓰지 않고 승연이네서 잘 지내고 있다. 잘 지내고 있는 것은 다행이면서 어린 녀석이 상황 파악하고 처신하는 게 어른 스러워 더 마음이 아프다. 아이는 아이여야 한다는 게 내 소신 아니던가...

치료받은 부위의 체크하기 위해서 보험없이 진료가 가능한 USC Medical center를 찾아갔다. 접수하는데 2시간, 호명받는 데 4시간, 병원 베드에 누워 치료가 끝날 때 까지 4시간...10시간동안 기다림에 미치는 줄 알았다. 보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LA시가 USC와 손 잡고 운영하는 종합병원인데 시설도 깔끔하고 최고의 의료진이 포진하고 있단다. 물론 대학병원의 특징 상 수련의가 뻘짓하는 것은 우리나 그네들이나 마찬가지 인가보다.
아내가 마취주사 맞다가 비명을 질렀다. 낼 모레면 전공의가 될 수련의로부터 주사 맞다가 말이다.

어찌되었든 미국의 의료서비스는 아이러니한 데가 있다.
돈이 없어 병원에 못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큰 병원을 운영하는 시나, 보험이 있는 사람만 받는 병원이나 매 한가지로 비용에 있어서는 USC 메디컬 센터 운영하는 비용으로 국가 보험 수혜 대상을 넓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또 아닌가보다.
어찌되었든 그 싼 유학생 보험으로 양질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돈 아끼자며 무식을 떨었던 스스로를 채근하면서 부디 아내가 걱정하는 것과는 다르게 새살이 아름답게 돋아 얼른 피아노 앞에 앉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다음 약속이 7시 45분이니 참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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