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가 "비누방울 같은 연극, 때 빼고 배꼽 빼는" 이란다.

교회 아이들 데리고 대학로 공연을 보마고 계획하고 청소년관람가에 내용도 있는 연극을 골라 고른 것이 이 연극이었다.
오아시스세탁소 극장이라는 곳을 지도검색해보니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걸었던 바로 그 길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참고로 난 경신고 졸업했다.^^;;

지금 생각해 본 건데 대학로 공연 몇번 봤지만 콘서트 빼고 뮤지컬 빼고 "연극"은 처음 인것도 같다.

소극장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소극장, 그러니까 뮤지컬 기준의 소극장의 규모를 기대했는데 100명이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아주 작은, 그리고 소박한 인테리어에 앉은뱅이 의자, 말그대로 소극장이었다.

그럼, 배경 설명은 이정도 하고 본론으로 가보자.

오아시스세탁소는 뭐 현대식 세탁서비스에 비견할 바가 아닌 참으로 소박한 80년대의 정서를 가진 동네 세탁소다.
이런 세탁소를 보기가 이제는 참으로 어려워졌다는  인상을 극중에서는 풍기지만 우리동네에는 아직도 이런 류의 세탁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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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30년을 세탁소를 운영하는 연극의 "오아시스", 강태국.
연극의 전체 스토리를 떠나서 그의 연기가 뿜어내는 전원일기식의 소박함은 소극장 전체를 채우는 무게가 있다.
그의 소박함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 낭만이나 노스텔지어가 되어버린 우리의 동네 아저씨, 바로 그것이다.

그가 살아가는 현실는 현재이지만 그의 가슴은 여전히 80년대의 향수 속에 담겨 있다.
그러하기에 각박함과 개인주의로 얼룩진 이 사막같은 세계 속에서 그의 삶은 오아시스일 수 있다.
이러한 삶은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의 본래의 모습, 자연스러운 모습일진대
이제는 이러한 삶이 오아시스라는 심상에 담길 만큼 지금의 현실은 각박해지고 매말라있다.

여기서 "세탁소"가 요청된다.
오아시스가 아니라 지금의 세계가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의 돈에 대한 욕심, 이웃에 대한 불신으로 더럽혀진 우리의 삶이 세탁되어야 하는 것이다.

강태국이 오아시스로 남기 위해서
그가 하는 세탁 일이 인생의 고락을 세탁하는 유의미한 소명으로 남기 위해서
그렇게도 처절하게 이미 작고한 아버지를 부르며 절규하는 모습 속에
내가 잃어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존경을 다시금 일깨울 수 있어서
이 연극은 큰 주제와 아울러 가슴을 울리는 몇 개의 별사탕들이 있어 좋았다.

강태국이 30년을 한결같을 수 있는 것은 삶에 대한 소명때문이 아닐까 한다.
언제고 삶에 대해서 혹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job과 vocation 혹은 occupation의 미묘한 차이에 관해서 몇자를 끄적여 보고 싶었는데 간단하게 짚어 보자면 강태국의 세탁 일은 돈벌이를 위한 job이나 나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occupation이 아니라 오아시스로서의 삶의 파장을 던져주기 위한 vocation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이 vocation이 될 때 나의 삶, 이웃의 삶은 해갈의 오아시스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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