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밀양"은 그다지 유쾌한 단어는 아니다. 이유인 즉은 이 몸의 성(姓)이 "박"가이다보니 어릴 적부터 듣는 소리가 "밀양 박"가냐? 였다. 다행스럽게 밀양 박가였으면 좋았을 텐데 난 "반남 박"가 여서 대한민국의 박가는 "밀양"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과 압박 속에서 눌려 있었기 때문에 "밀양"이라는 동네가 주는 어감에 있어 유쾌함을 느낄 리 만무하다.
이걸 선이해라고 한다면 내가 가진 "밀양"의 선이해는 이것이다.
칸느 영화제에서 나에게는 억압이요 강박을 느끼게 한 "밀양"이라는 제하의 영화가 주목을 받았단다.
아울러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엄청난 소식들을 들었다.
그 이전에 영화 "밀양"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한 것은 친구의 추천이다.
신뢰할 만한 친구녀석이 추천하니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봐야한다는 모종의 의무감이 있었는데
수상 소식이 쐐기를 박은 것이다.
아내와 보기로 한 약속을 까마득하게 잊고 몇이 어울려 늦은 밤의 극장을 찾았다.
참고로 약속을 잊은 탓에 그 밤은 숙면을 빼앗겼고 늦은 밤의 극장행은 경미한 차사고까지 낳는 우울하다 못해 처절함의 구렁텅이에 극장에 함께 간 무리들을 쳐 넣었다.TㅅT
"밀양"의 영어 제목은 "The Secret Sunshine"
밀양의 한자를 굳이 새길 필요는 없지 싶다.
은밀한 빛...
무엇이 밀양에 사람들이 관심갖게 했을까?
일단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이 보증하는 영화의 퀄리티가 주요한 이유일 것이고
이 영화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가 묻어 놓고 사는 우리의 이야기를 너무도 진솔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주인공 신애(전도연)는 처절하다 못해 사는 이유마저 찾기 힘든 고통 속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다.
그녀는 바람난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었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 와서 아들을 잃었다.
이런 대목에서 아빠된 지금의 나로서는 자녀를 잃는다는 것이 소재상 진부할 수 있어도
얼마나 부모에게 큰 상실인지를 진저리나도록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생각한다.
신애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다.
그 상실의 경험 속에 허덕이다가 그는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표현이 진짜였느냐 혹은 가짜였느냐에 감독의 관심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그야말로 신애는 종교의 힘으로 상실을 극복하려 한다.
문제의 시작은 종교의 힘을 빌어 "용서"를 감행하려했을 때 자신을 상처를 치유한 그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죽인 그 파렴치한 유괴범 조차 이미 용서했다는 현실에 직면한 그 순간 부터이다.
아들을 잃은 상실의 상처는 아직도 신애를 괴롭히는데 정작 범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평안한 삶을 살아간다. 용서가 되지 않는다. 용서를 해서도 안된다.
그는 자신에게만 하나님의 사랑을 제한한 결과로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견딜 수 없어
하나님께 반항하기 시작한다.
교회에 가서 의자를 두드려 기도를 방해하고
기도회에가서 "거짓말이야"를 틀어 훼방을 놓고
심지어 자살을 기도함으로써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유의지를 구현하려 한다.
신애의 도전은 여기까지이다.
죽으려 했던 객기는 곧 살고 싶다는 희망으로 변화한다.
마지막 장면의 시궁창에 드는 햇살이 이 모든 인간 실존에 깃드는 하나님을 손길을 묘사하기에 충분하다 생각한다. 여자가 머리를 자를 때는 무엇인가 결심한 바가 있는 출발을 의미한다. 아울러 신애가 머리를 자르기 위해 거울을 바라보는 모습은 흡사 송강호의 손에 들린 신애의 영정을 연상케 한다.
나름의 생각은 신애의 처절한 상실의 삶에 종언을 고하고
이제는 시궁창에 까지도 깃드는 밀양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감독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시궁창 같은 우리의 삶, 혹은 유괴범의 삶에도 하나님의 은밀한 빛은 깃든다.
복음서의 말씀 그대로다.
물론 이 영화에서 현상적으로 보여주는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분명 반기독교적 요소를 짙게 드리운 것 같지만
자살기도가 실패로 끝나는 시점부터는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하다는 기독교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교회 내에서 열망하는 종교적 제의의 변화에 부합하는 시대적 조류라는 생각도 한다.
신에 대한 생각, 신에 대한 경험은 현상적 제의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조이며 직관의 영역이라는 현대인들의 성향을 반영하듯, 현상으로서의 기독교는 거부하지만 은밀하게 우리를 비추는 "밀양"으로서의 하나님, 신의 존재는 인정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애의 이름이 "神愛"라고 하면 그것은 '신의 사랑'이다.
신애의 존재 자체,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반영이라고 하면 너무 억측일까?
사족,
전도연의 연기는 그야말로 만개했다. 가슴으로 우는 연기는 가히 압권!!
송강호의 의미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어찌보면 또 다른 밀양의 화신일지도 모른다.
원작 이청준의 "벌레이야기"를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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