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함없이 지갑을 열만한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갈 무렵,
"나를 좀 읽어줘"라고 소리치며 대기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단연 일순위는 이 책이었다.
차례를 쭈욱 훑어본다.
필 꽂히는 타이틀이 몇가지 보인다.
기대 가득하고 읽어내려가는데 "이런..."
오랜만에 뽀대나며 내용은 온통 싸이월드 스크랩한 글만도 못한 짜집기로 범벅인 책을 읽고 기분만 상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차라리 "어니스트 섀클턴으로부터 배우는 리더쉽"이 낫지 싶다.
제목만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내용은 이미 간파되고도 남는다.
"비전"이니 뭐니 떠드는 리더쉽이 아니라 조직에서 울리는 주파수와 공명하는 리더쉽이 21c 리더쉽이라는 거다.
당연스레 조직이 만들어 내는 소리를 들으려니 청력을 발전 시켜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청력이니 뭐니 안해도 성서를 통해 모세의 소명을 알고 있다.
가나안의 "비전"은 리더였던 모세의 인식안에서 계획되어진 모더니티가 아니라
위로부터 들려오는 소리, 주파수에 공명한 결과였다. 즉 독불장군처럼 이래라 저래라가 아니라 관계에 기초한 공명이요 조화라는 거다.
저자는 이 말을 제목에서도 썼고 250페이지에 걸쳐 여기저기서 오려낸 글을 붙혀
리더는 "듣는 데 익숙해져야 합니다"라는 모자이크를 만들었다.
모자이크를 만들기 위해 붙힌 수많은 색지를 하나하나 검토한다고 한다면 얼마나 짜증스럽겠는가?
모자이크는 멀직이 떨어져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는 메세지만 감지하면 소임을 다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깐다 싶어 좋은 점 하나 소개해야 겠다.
스윗 교수는 리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리더는 만들어질 수 없으며
다만 상황이 요청할 때 누군가가 그 상황에 응답함으로 리더가 된다는 거다.
태어날 때부터 리더적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도 80~90%는 동감이다.
그러나 현대의 비극은 가시화된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 이러한 리더를 양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어디에서 근거한 믿음일까?
생각해 볼 문제이다.
하루에도 수만가지 리더쉽 책이 쏟아져 나온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 리더쉽 책과는 차별된 책이 바로 이 책이라는 건데...
그게 이거라면 리더쉽 책은 읽지 않을 거다.
이래서 기본에 충실한, 실용서가 아닌 원론, 구름에 뜬 소리하는 책을 읽어야 하나부다.
PS. 레너드 스윗 교수가 얼마나 명망이 있는 분인지...
이런 책을 읽고서도 설마 하는 맘으로 이 분의 책을 또 읽었다.
실망 시키지 않는 아주 심지가 견고한 분임을 담박에 알 수 있었다.
모자이크에 걸출한 예술인, 레너드 스윗이다.
아울러 역자도 처음들어 본 분이라서 내내 읽으면서 번역이 덜컹거려 멀미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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