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이미지를 몇군데서 찾아봤는데 읍따 ㅜㅠ
그만큼 소수 독자에게만 어필한 책이라는 말인데...


나도 소수에 해당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선물해 주어서 읽었지 안그러면 서점 한켠에 박혀 있을 이 책을 읽을리 만무하지...


영적전쟁이라...십자군전쟁 시절이나 가능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책 제목으로 선택한 걸 보면 번역자의 단호한 의지도 엿보인다.
읽을 사람만 읽으라는 깡일 수도 있고...


원제는 "the final quest"니까 제대로만 번역하면 지금 시절에 떡 하니 부합하는 제목을 만들 수 있을텐데 말이다.




어쨋든 제목에서 앨러지 반응이 일지만 선물이므로,
믿을만한 사람의 선물이므로,
예의 갖추고 읽어 내려갔다.


천국에서는 황금길이 깔려있고 내 이름이 음각된 명패가 길 가로 늘어서 있는 빌라가 있고
전도 많이 한 사람은 면류관의 이파리가 펄럭이고
밥상에 먹을 것두 많이 차려주더라...
머 이런 식의 변형된 저질 업보사상의 이야기를 은근히 기대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그러면 그렇지, 영적 전쟁이 제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저자의 5개의 환상은 쌈박질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금언으로 가득한 환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순례자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좇는 마지막 여정에 발 붙인 사람들이다.


저자가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의 여러 이미지를 통해
환상은 시작된다.
어린양이고 구세주이며 사랑 자체이시며 좋은 말은 다 갖다 붙혀도 좋다.
그 가운데 특별히 세대론자들의 단골메뉴인 심판주의 이미지도 등장하는 것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물론 저자의 환상가운데 등장하는 심판주는
죄책감을 유발하고 순진무구한 신앙인을 병들게 하고 겁주기 위한 심판주는 아니다.

"인간이 지은 죄나 의를 판결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움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의로움은 하나님과의 연합안에서만 존재하며 인간과 하나님의 일치를 경험케 하는 '의로운' 심판이다"
(p.194)




심판이 "의"이고 "교제"인 이유는
더 이상 우리가 숨길 것이 없는 완전한 노출의 장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곳에서는 우리가 감추어야 할 아무것도 없고 감출 수도 없다.
그래서 그분과의 진정한 교제가 가능한 곳이 바로 심판대 앞이다.


이런 환상이라면 골백번을 고쳐 받아도 신앙생활에 유익할 것 같다.
인간적인 조건과 기준이 무너짐을 경험하며
더 이상 우리의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는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조건, 그분의 능력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선교다.


그분의 능력은 결점이 있기에 탓하지 않고 보듬는 능력이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기 바쁘시지만 정작 그분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 사랑이다.

따라서 그분의 사랑은 차별이 없다.
그분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어떤의미에서 전무하다.


이런 사랑에 내 시선과 내면을 고정시키며 걷는 하루하루가 그 분의 영광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여정, 어떤의미에서 최종적인 발돋움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