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를 읽고 나서 파울로 코엘료의 정신세계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의 책을 한권 더 읽어 봄이 좋으리라 생각하고
"섹스"에 관한 이야기로 범벅이라는 리뷰들에 혹하여 주저없이 빌려 읽어 버린 책.

이 책을 읽으면 독자는 두번 속는다.
아니라고 우기면 적어도 나는 그랬다고 말하고 싶다.
첫째는 이 책의 저자는 당연히 "여성"이다라는 착각을 갖게 된다는 것.
뭔 소리냐 하면 여성이 아니고야 이다지 여성의 시선에서 여성적인 내면을 읽어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며
이러한 의문을 의식하기 전에 이미 작가는 여성이다라고 반사적인 인식을 하고 읽게된다는 점.
둘째는 이 저자가 표현한 여성의 내면세계가 실제 여성이 그런 것 처럼 생각하는 독자의 "넘겨짚음"이다.
말이 더럽게 어려워진다.
즉, 난 남잔데, 마치 내가 여성인 듯 생각하고 이 책의 내용이 진짜 여성의 내면을 그대로 그렸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래두 어렵다.

이책은
<연금술사>의 산티아고 대신 "마리아"를 등장시켜 진정한 성의 신비로움을 찾아간다는 구조의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동화적 내음을 풍기지 않는 본격 버라이어티 성인 성장 소설이라는 장르분류가 가능하다.

작가후기에도 밝혀듯이 파울로 코엘료는
이 책을 통해 세속화되어버린 성의 본질적 모습을 회복시켜 보려는 시도를 한다.
일종의 성 지침서 격으로 만들어낸 소설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연금술사>보다도 내게 더 와닿은 것은
간간히 뿌려져 있는 창녀 마리아의 세상보기가
탈근대주의의 특징들을 너무 적나라하게 벗겨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선택으로 창녀가 된 "마리아"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이건 그녀의 선택의 결과이다.
낭만주의적인 발상으로 운명을 운운하는 작가의 트릭에 속지 말자.)
브라질에서 제네바에 까지 와서 창녀로서 살아가면서 겪는 남성들을 보면서
내뱉는 지적인 창녀의 언설이란
지금 우리의 모습, 혹은 나의 모습인 듯 해서 찝찔하다.

타인의 반응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대답하는 그녀의 태도는
더이상 우리시대의 태도가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끊임없이 그녀의 태도를 갈구한다.

성의 신비로운 차원에 눈을 뜨게 했던 랄프 하르트의 첫만남에서
랄프는 우리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호기를 부리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보려는 우리의 모습을 꼬집는다.


굳히기라도 하려는 듯,
사디즘과 마조히즘적인 섹스에 탐닉하는 마리아에게
고통이 가지고 있는 악마적인 요소들을 깨우쳐주면서 내뱉는 그의 말들은
다시한번 이세대의 우리의 모습을 꼬집고 비튼다.
"군인이 적을 죽이기 위해 전쟁터로 나간다고 생각하오?
아니, 그는 조국을 위해 죽으러 가는 거요.
아내가 남편에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주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오?
아니, 그녀는 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고생하고 있는지 그가 알아주기를 바라오.
남편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직장에 나간다고 생각하오?
아니, 그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피땀을 바치는 거요......"


블로그문화, 싸이질.
우리의 정신세계의 깔끔한 반영이 아닐까?

무의식적 관음증과 노출증...
노출은 누군가에 의해 보여진다는 구체적 행위를 전제하는 것이고
더나아가 적당한 수위의 노출을 통해 주변으로부터의 반응을 기다리며 달리는 리플에 "나"를 확인하려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가 더 진아에 가깝다고 판단한다.
관음증 역시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고 나서 내 삶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싶어하는 비겁함이 숨겨져 있다.

랄프는 정체성 없이 타인의 반응에 따라 "나"를 찾는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
여기에서 자유한 인물이 유일하게 창녀인 마리아다.

그녀는 타인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는다.
마음에 맺혀진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쏟아낸다.

물론 막말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그녀가 창녀이지만 지적(intellectual)이다는 사실을 여러군데서 암시한다.
그녀가 일터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드나든 곳이 도서관이었음을 기억하자.

아무튼, 섹스의 이야기로 점철되었지만
나름의 뼈를 가졌다.
대부분의 리뷰들을 보니 졸작이며 쓰레기라는 표현도 하더라만
내 정신세계가 이상한 건지 <연금술사>보다 나았다.

한편의 유쾌한 성인물을 보고 난 듯 뿌듯한....^^;;;

온통 살색으로 범벅인 성인물이 아니라 스토리의 구성이 탄탄한.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이 있는...머 그런 인상.


참고로
제목의 "11분"은 성교지속시간이라는데 이것도 후하고 넉넉하게 줘서 그렇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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