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도 걸렸다.

알라딘에 들락날락 하다가 엉겁결에 어렵지 않다는 대담한 서평을 보고,
두권짜리 번역본 보다 한권짜리 원서가 경제적으로도 절약되는 바 있어 주문을 하구서는 읽는데 두주가 걸렸나부다.

<해리포터>보다는 형용사가 적어 무난히 뼈대는 찾아갔는데
<연금술사>만큼 쉽지는 않아서 다소 애먹었다.

Dan Brown...대박이다.
그 플롯에 있어 넘버 원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 하다.


어렴풋이 작년 이 맘때 미국에 있을 때가 기억난다.
미국에서 "다빈치 코드"라는 책은 전국적인 호응속에서 펼쳐진 하나의 센세이션이었다.
ABC방송에서는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기도 했고
몇몇 저명한 외경연구가들이 나와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혼인설을 이야기했다.
프랑스 남부 작은 마을에는 아직도 예수의 아기를 임신한 막달라 마리아와 요한이 와서 살았다는 전설도 있다고...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혼인의 개연성은
영화 "예수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통해서도 엿본 적이 있던 터라 그 충격이 덜했다 하나
기독교의 계시성을 희석하다 못해 그저 뭇 신화와 다름없는 수준으로 전락시킨 것은 지나치다 싶었다.

내가 생각컨대,
Dan Brown은 "힘"의 구조 속에서 기독교를 기득권자로 상정하고
피해의식을 가지고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선 "예수"의 흠집내기에 몰입했고
계몽주의적 환상에서 벗어났다고는 하나 과학적 근거를 들이밀면 속고야 마는 독자들을 의식하고
전공자들도 들어보기 힘든 신약외경을 들먹이며 예수의 신성을 벗겨버린다.

여기까지 좋다.

그러나 문제는 "작가적 상상력"이 만들어 내는 힘이다.

신학이라고 하고 있으면서도 본서를 내리 읽으면 혹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만약 조직적인 변증, 기독교역사, 성서학에 문외한 진실한 신자들이 읽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들의 삶의 중심을 흔들만큼의 힘을 만들어 내는 상상력인데
작가는 그에 대한 책임이 없다.
왜냐하면 "작가의 상상력"은 작품에 용해되고 작품이 완성되면 이미 이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독자만의 몫이다.

"종교"의 기원은
음과 양, 남성성과 여성성의 합일의 추구라는 개념은 소설을 지배하는 기본 사상이고
작가의 종교에 대한, 혹은 회복하고 싶어하는 종교의 순수성이다.
본능적으로 가자는 거다.
합일의 상태, 즉 접신, 빙의같은 체험이 원초적이라는 말인게다.
무당이 굿하며 경험하는 접신체험이 "본래적"이라는 말도 될꺼다.
좋다.
포스트모던적이라고 해야하나...
도그마틱한 기독교보다야 더 새시대에 맞는 거 같다.

그래서 저자는 Langdon의 입을 빌어 말한다.
"Sophie, every faith in the world is based on fabrication. That is the definition of faith-acceptance of that which we imagine to be true, that which we cannot prove. Every religion describes God through metaphor, allegory, and exaggeration, from the early Egyptians through modern Sunday school.......The problems arise when we begin to believe literally in our own metaphors"

결국 종교는 사람의 손에서 비롯되었다는 거다.
인간 연구하면 종교가 보인다라고도 하겠다.
아~ 그럴 듯 해 보인다.
종교학 시간 첨에 들었던 말.
종교학은 인간학이다.
맞다. 인간학이다.
그래서 신을 잃는다.
인간학이기 때문에...

또 흥분한다.
종교가 우리 손에 있다면 매일 교회를 찾고, 절을 찾고, 성당을 찾으며 메카를 향해 하루에 네번이나 기도를 하는 무슬림은 다 미친거다.
오직, 종교가 인간 손안에 있다는 진리를 알고 "무신론자"이기를 자처하는 그들만이 정상이다.
그러나 따분한 무신론자보다 먼가 흥분되는 "체험"이 있으면 뽀대라도 나니,
음양의 합일이라느니, The Priory of Sion의 밀교적 남녀의 성교에서 느끼는 환희가 본래적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참 사랑이시다...
그대로 둔다.
불쌍히 여기고 기도하라 하신다.


여기다가 너무 은폐된, 아니 억눌린 역사속의 여성성의 표현들에 집중하면서
페미니즘적인 접근을 하며 여성독자로 하여금 "아하...맞아"를 유도한다.
그러나 남성인 Langdon이 결국 Holy Grail을 찾는 주인공임을 잊지 말자.
이 작가는 참 교활하다.
남성, 여성 독자 둘을 함께 잡았다.

훌륭한 작가다.

읽어 볼만 하다.
그러나 심약한 초신자나 예수를 모르는 기독교신자는 세류에 휩쓸려 이 책 잡으면 인생 복잡해진다.

막달라 마리아 결혼과 관련해 들이 댄 빌립복음서의 해석에 있어서 문제점을 지적한 소기천 교수님의 글을 첨부한다.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책에서 인용되고 있는 빌립 복음서와 마리아 복음서와 관련하여 말씀을 드림니다. 이 두 문서는 나그 함마디 문서(The Nag Hammadi Library)로서 도마 복음서와 함께 언급을 해야 합니다. 세 문헌들에 마리아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데, 이는 막달라 마리아를 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문서들은 콥트어로 된 문서입니다.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짝'이란 의미가 '그리스도의 부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원래 콥트어에서 그 단어는 동역자와 일꾼 혹은 제자나 사도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빈치 코드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콥트어를 '짝'이라 번역한 것은 다분이 작가의 반기독교적 의도가 내포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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