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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변증 - ![]() 정성욱 지음/홍성사 |
그런데 몽땅 읽고 난 나의 느낌은 이 분들이 과연 이 책을 읽고 나서 멘트를 써 주셨을까?하는 의구심이다.
내내 읽으며 홍성사 디자인팀의 질적인 우월성에 내심 박수를 보내면서 읽었는데
역시나 "알맹이가 부실하니 겉모습이라도" 심리가 기저에 쫘악 깔려 있는 듯 하다.
"변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감당 할 자신이 없었는지
"티타임에 나누는"이라는 관형어구를 빌어 "변증"의 무게를 던다.
내심 하바드에서 M.Div를 하고 옥스포드에서 Alister Macgrath지도아래 Ph.D를 하셨다고 해서
신선함과 치밀함이 묻어 나오리라 믿고 몇 장 안되는 페이지를 넘겼는데
기대를 처절하게 무너뜨리는 책이다.
가볍다 못해 허공에 던지면 날아 갈 듯 한 책.
"변증"이 아니라 교리교육 정도 밖에 의미가 없는 책.
대화의 형식을 빌어 도전받는 진리를 해명하고는 있는데
정성욱교수님께 "변증"을 듣고 설득을 당한 청춘들이 더 측은하다.
나의 이해에 있어서는
"변증"은 말 그대로 이성적 도전 앞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같은 논리적 구조를 사용해서 기독교의 진리를 드러내는 작업을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할 부끄러운 논리적 구조. 그것 이상이 없다.
실망스럽다.
다만,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마지막 파트에서 같은 동료 교수의 아들이 하바드에 가서 교양으로
"종교학 개론"이란 수업을 듣고 나서 교회 나가길 그만두었다는 현실이다.
학부때 전공한 터라 "종교학 개론"이 신앙인에게 줄 수 있는 타격을 한올한올 동감한다.
기독교 문화안에서 성장했다 하더라도 3개월 남짓한 "종교학 개론"에 무너진다.
두가지 반응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하나님"을 건성으로 믿었기 때문이라는 채근성 답변이고
둘은 기독교 교육, 신앙 교육이 세속적 학문의 치밀함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처음 것은 논외로 하자.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반응에서 드러나는 현 교육의 문제를 말하고 싶다.
신앙교육은 방법론에 있어서세속적 학문의 방법론과는 달라야 한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정보의 전달이 목적이 아니므로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교육은 세속적 학문의 방법론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한다.
그러니, 세속 학문의 도전 앞에 섰을 때 당황 할 수 밖에 없다.
그 치밀함을 따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학자들도 당황하는 주제앞에
주일에 한번 나와 설교만으로 교육받는 일반성도들을 생각해보라.
당황스러워 하는 건 당연하다.
방법론적 전환이 필요하다.
변증에 대한 새로운 논리와 우리만의 이야기(narrative)가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의 탈근대성은 믿는 우리에게 호기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한다고 머라 할 사람은 없으니까.
논리적 변증은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자.
우리의 경험과 체험을 그들에게 논리적으로 담아낸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인정하자.
결국 신앙은 믿음의 문제이지 이성의 문제가 아니므로.
논지가 또 흐려지는군.
여기서 마쳐야 겠다.
암튼, 이 책은 너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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