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해독을 마쳤다.
시사 영어사 영한대조 단편소설 같은 크기의 작은 소설이 어찌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자들을 열광시키는가?

또한 "연금술사"가 무엇이길래 경쟁적으로 인터넷 서점들은 꾸준한 가격인하로 탐서주의자들을 현혹하는가?

내용은 내용 속에 뭍어 가면 흥미진진, 줄거리 읊으라면 뻔한 스토리.
그 뻔한 뼈대에 현대의 화두인 "spirituality"를 담았고 그 spirituality가 허기진 정신세계의 일상을 가진 우리에게 어필한 것이 아닐까 한다.
내가 굳이 spirituality의 번역어를 자제하고 싶은 것은 이 단어를 번역하는 순간,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의미에 더하여 내 색깔, 그니까 기독교적 내음을 풍기게 될까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산티에고(Santiego)가 신학수업 중에 단지 여행에 대한 희구로 수업을 중단하고 부모를 떠나 자진해서 목동의 유랑생활을 하면서 시작되는 일종의 성장 소설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 책이 동화라 불리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책에 나온 파울로 코엘료의 이력을 보니 문맹 어린이를 위한 기관을 설립하고 이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다는 짧은 문구를 보고 놀랐다. 사실 한 기관의 장이라면 그가 하고픈말을 담는 그릇은 "수필"이 더 어울릴 것 같기 때문이다. 어쨋든, 연금술사를 그의 이력과 연결하면 이 책의 진실성은 더욱 선명해진다.

다시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면, 뼈대는 뻔한 이야기라 했고 그 살이 범상치 않다. 목동으로 삶을 살아가던 중에 만난 집시의 꿈해석을 통해,
멜기세덱이 준 우림과 둠밈을 통해,
크리스탈 가게에서의 경험을 통해,
연금술을 익히려는 영국인을 통해,
사막의 여인인 파티마를 통해,
최종적으로 연금술사와의 만남을 통해,
그 스스로가 연금술사가 된다.
물론 납으로 금을 만드는 연금술사가 아니라 묻혀진 개인의 신화, 혹은 사명(Personal Legend)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연금술사다.
보물이 뭍혀 있다는 피라밋으로의 여행, 물론 상징적인 의미에서 개인이 가지는 그럴싸한 목적, 혹은 목표일게다. 이건 거창할 수록 좋다. 왜냐하면 거창한 만큼 내 인생의 가치가 높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싸한 목적이 내 인생의 가치를 높히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 안에 이미 있는 인생의 목적(Personal Legend)를 찾는데서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고 코엘료는 말한다.

산티에고가 보물을 찾게 되는 그 허름한 교회는 목동시절에 양들과 수십번을 오가며 들르던 곳이다. 보물이 뭍혀 있는 곳이었지만 자아의 신화를 찾지 못하고 묻어놓았을 때는 그저 평범하기 그지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그를 이루는 법을 발견한 후에는 이미 그곳은 평범한 곳이 아니다.

"자신의 꿈을, 어릴 적 가졌던 꿈을 이루어가라"
이렇게 하면 이 소설의 주제를 89%정도는 담은 게 아닐까?

sprituality측면에서 이 소설은 다분히 내재주의적 신관에 의존한다.
마치 아트만(개인)이 브라마(절대정신)와 합일되는 경지가 연금술을 이루는 때라고 말하는 듯 하다.

산티에고의 여정을 인도하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앞에서 만난 사람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the soul of World"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은 나와 이 세계의 영이 하나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어느순간 "the soul of world"가 절대적이 아니라는 언질을 준다. 바로 태양과 "the soul of world"가 상생의 관계에 있다고 함으로서 the soul of world의 절대성도 다소 흠집이 난다.

그럼 코엘료는 진정한 spirituality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이라 말하는가?
개인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한다.
"마음 먹기에 따라 신도 될 수 있다"까지 밀고 나가도 될 기세다.

이게 먹힌거다.
다소 중세를 배경으로 한 환타지 소설의 긴박감도 제공한 이유가
"일체유심조"를 머리 속에 박아 넣기 위해서다.

한번, 결론을 맺어보자.
연금술사는 "동화"로 읽어야 한다.
꿈을 갖고 그 꿈을 갖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라.
하늘도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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