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책읽기를 싫어한다.
그중에서도 소설은 정말이지, 무진장무진장 싫어한다. 그나마 읽는 책이라면 교과서...
그리고 모던적인 정보위주의 사회과학서적들이 주를 이룬다.
이런책을 읽다보면 척박해진 뉴론이 삐걱대면서 뻑뻑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 때마다 필요한
윤활유로서 헨리나우웬의 서적 이상이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심리학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읽은지가 1주일이 지나서 가물가물하지만 쓰지 않으면 가물가물하게 남아있는 것도 잃을 것 같아서 몇자 끄적여 본다. 당연히 남아있는 느낌위주가 되겠지만...

먼저 이책의 주 독자는 각 장의 제목이 보여주듯이 사역을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먼저 나우웬은 시대적인 현상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대안을 제시한다는 기본 골격을 가지고 각장을 할애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의 시대적 통찰이 1970년대 미국의 사회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현재 우리의 사회와 대동소이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운운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촌의 한사람으로서 왠지 도태되는 느낌. 그것이 처음의 느낌이었다.

어쨋든,
그의 지적은 현대사회의 특징이 '현재'라는 시간에 집중함으로서 창조의 원천인 과거와의 단절을 가져왔고 거대담론위주의 모던사회와 달리 단편화된 이데올로기를 추구하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경험되는 것에 가치를 두며 신념이 다른 사람을 보고도 위협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심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거대담론이 주는 위안없이 단편적인 것을 좇기 때문에 삶의 방향성과 통일성을 상실한데서 오는 불안을 새로운 불멸에 대한 추구로 극복하려 하고 있다. 각종 마약, 환각제, 뉴에이지운동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현재에 대한 관심은 죽음을 직면한 인간실존이 엄연히 가지는 죽음의 문제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잃게 한다. 따라서 현대의 사역자는 이러한 현대사회의 특징들을 고려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사역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역자를 그는 역설적으로 "상처입은 치유자"라고 표현한다. 사역자가 사역을 하는 필드는 현재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그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별세계가 아니다. 즉, 사역자도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역자는 자신의 몸에 난 여러부위의 상처를 치료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치료를 바라는 그들에게 열려있는 존재이어야 한다. 그러면 나의 몸은 그대로 방치하라는 것인가?
나의 여러부위의 상처를 동시에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처씩 치료하면서 나머지 역량을 그들에게 집중하는 것, 이것이 기본적으로 사역자들이 가져야할 태도라 이야기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사역자의 모범이기 때문이다.
나우웬은 마지막 장에서 구체적으로 사역자가 이러한 태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실제적 훈련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내용은 그의 책 "영적 발돋움"에서 심화시킨 바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참고 하길 바란다.
쓰고 나니 횡설수설이네...




2003/03/21 21:18:59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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