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앞 도서관에 가서 소일 거리를 찾으며 뒤적이던 잡지들을 뒤로하고
한층 더 올라 찾아간 철학/종교파트 서적들을 훑어보며 눈에 들어오는 제목에
집어든 책이다.
언젠가 부터 나의 정체성의 모호함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던 차라서
세계관을 포함한 제목이 어필했는지 모르겠다.
성인경목사는 한국에 라브리공동체를 소개하신 분이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구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와 방향으로 사역을 하시는지에 관하여 무지했기 때문에
한번 이분의 수필을 읽어보마고 생각을 하고 있는중에 발견한 책이라서 주저없이 읽어내려갔다.
청년시절의 상대주의적 가치와 영/육이라는 이원론적 사고에 물들어 있다가
영국 라브리로의 유학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그리스도교적 세계관, 성경적 세계관에 대한
틀을 잡기 시작하셨다는 경험과 함께
절대규준이 부재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절망적 결과 예측을 로마제국의 패망과 연결하여 설명하는 쉐퍼의 통찰을 소개하는 점은 신선했다.
즉, 로마제국의 패망은 도덕적 문란 혹은 기득권의 부패 등을 역사적으로도 거론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사고에 대한 절대적 가치-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이 되겠다.-가 없기 때문에
상대성을 인정하는 풍토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동양문화에 있어 "중용지도"라는 것도 결국 상대주의의 유사어에 다름아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이 세계관 뒤집기이다.
그러면 어떠한 세계관을 가져야하는가? 철저한 성경적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기 위해 도움을 받았던 스승으로 프란시스 쉐퍼를 처음으로 꼽는다.
그리고 성/속 이원론 지양의 모델로 영문학자이며 그리스도교 변증가이기도 했던
C.S.루이스를 꼽았다. 동의하고 재청도 마다않을 부분이다.
(주:쉐퍼에 관하여는 할말이 없고, 특별히 C.S루이스의 정수는 번역서를 읽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가능하면 원서 읽기를 추천한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영문학자의 글이 이다지도 정갈하고 쉬울 수 있는가?고 놀라고 또 놀랄 것이다.)
전체적 구성은 라브리 경험과 그것을 통해 얻은 통찰을 서술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는데
제목이 주는 강열함에 미치지 못하는 감이 없잖아 있다.
그러나 젊은 시절 실존을 뒤흔드는 사고로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적어도 "다른 사람도 나같은 생각을 했구나" 하는 데서 오는 안도와
희망을 느끼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2003/03/15 10:15:47에 쓰다
한층 더 올라 찾아간 철학/종교파트 서적들을 훑어보며 눈에 들어오는 제목에
집어든 책이다.
언젠가 부터 나의 정체성의 모호함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던 차라서
세계관을 포함한 제목이 어필했는지 모르겠다.
성인경목사는 한국에 라브리공동체를 소개하신 분이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구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와 방향으로 사역을 하시는지에 관하여 무지했기 때문에
한번 이분의 수필을 읽어보마고 생각을 하고 있는중에 발견한 책이라서 주저없이 읽어내려갔다.
청년시절의 상대주의적 가치와 영/육이라는 이원론적 사고에 물들어 있다가
영국 라브리로의 유학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그리스도교적 세계관, 성경적 세계관에 대한
틀을 잡기 시작하셨다는 경험과 함께
절대규준이 부재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절망적 결과 예측을 로마제국의 패망과 연결하여 설명하는 쉐퍼의 통찰을 소개하는 점은 신선했다.
즉, 로마제국의 패망은 도덕적 문란 혹은 기득권의 부패 등을 역사적으로도 거론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사고에 대한 절대적 가치-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이 되겠다.-가 없기 때문에
상대성을 인정하는 풍토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동양문화에 있어 "중용지도"라는 것도 결국 상대주의의 유사어에 다름아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이 세계관 뒤집기이다.
그러면 어떠한 세계관을 가져야하는가? 철저한 성경적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기 위해 도움을 받았던 스승으로 프란시스 쉐퍼를 처음으로 꼽는다.
그리고 성/속 이원론 지양의 모델로 영문학자이며 그리스도교 변증가이기도 했던
C.S.루이스를 꼽았다. 동의하고 재청도 마다않을 부분이다.
(주:쉐퍼에 관하여는 할말이 없고, 특별히 C.S루이스의 정수는 번역서를 읽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가능하면 원서 읽기를 추천한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영문학자의 글이 이다지도 정갈하고 쉬울 수 있는가?고 놀라고 또 놀랄 것이다.)
전체적 구성은 라브리 경험과 그것을 통해 얻은 통찰을 서술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는데
제목이 주는 강열함에 미치지 못하는 감이 없잖아 있다.
그러나 젊은 시절 실존을 뒤흔드는 사고로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적어도 "다른 사람도 나같은 생각을 했구나" 하는 데서 오는 안도와
희망을 느끼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2003/03/15 10:15:47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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