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일 16:30발 OZ 202편으로 가족과의 진한 이별을 뒤로 하고 찬빈이와 찬휘, 핸드 케리를 위한 짐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보안검색대를 지나 비행기에 올랐을 때의 안도. 안도감은 손가락을 옥죄는 가방들의 무게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해외이사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 이민가방만 7개를 싣고 나머지 짐들을 나눠 손으로 들어나르다 보니 아이들과 쉽지가 않았다.
비행기에서 적잖이 걱정되었던 두 아들 역시 밥먹고 나서 한국시간에 맞춰 잠을 자다 보니 잠깐 실갱이를 했을 뿐 도착하는 동안 너무 점잖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찬빈이가 의자에서 자는 것이 익숙치 않아 다리를 뻗게 하기 위해서 나는 말로만 듣던 비행기 입석을 경험해야 했다.
비행기에서의 복잡한 감정은 LA공항에 도착했을 때 사치였다.
가족들이 함께 해서 7개의 이민가방은 수하물로 붙힐 수 있었으나 이제 이 7개를 누가 옮긴단 말인가?
아이들이 있어서 이민가방을 priority택을 붙혀 일찍 찾을 수는 있었다. 문제는 7개나 되는 이민가방을 누가 옮기는가였다. 아이를 둘러 멘 아내가 3개, 내가 4개를 열심히 밀고 가고 있는데 마침 나가는 길이 오르막이다. 왜 필요없이 여기다가 오르막을 만들어 놨을까? 도저히 밀리질 않아서 내가 부분적으로 밀어놓고 다시 와서 아내의 것을 밀어야 겠다고 생각한 데 부터 꼬였다.
부리나케 날라놓고 마중나온 윤석이를 만나 짐을 인계하고 다시 들어가려니 못들어간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
"내 아내가 아이들과 안에 있다. 솰라솰라"
"그래도 못간다. 포터 서비스를 이용하라"
"포터 불러 달라"
"저기 있다"
"포터, 아내가 쏼라쏼라~"
"Ok. 무슨 비행기 쏼라쏼라~?"
"아시아나"
"Ok"
이런 대화를 나누고 10분이 지나도 30초면 나와야 할 아내가 나오지 않는다.
내가 속이 탄다.
다시 폴리스를 찾아 쏼라쏼라^^
겨우 3층에 있는 아시아나 사무실에서 말해 보라는 말을 듣고 직원에게 이야기해서 아내가 LA공항 밖으로 나온 것이 헤어진지 30여분이다. 초장부터 참 스릴 넘치는 우리의 행보다. 이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풀러에 있는 친구들의 환대로 토요일 저녁에 학교 기숙사에 짐을 풀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고 풀러에서 하루를 지내며 종일 떠들었다. 시차적응을 도와주기 위한 친구들의 권모술수도 너무 자연스럽고 이국 땅에서 만나는 친구들의 환대로 마음도 편하고...^^
팬드폰을 도착하자 마자 개통했다. 연락처 없이 정착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아니까...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 되어서야 Costco에서 일주일 정도 먹을 식량을 구비해서 기숙에 도착했다.
정확한 시간이 9시하고도 18분...
일단 방의 규모에 놀랐다.
그리고 불을 켰을 때 더러움에 놀랐다.
화장실에는 샤워탭이 없다. 여기저기 쓰레기가 한창이다.
천장에는 물어 샌다.
냉장고가 없다. 먹을 거 잔뜩 사왔는데...
주일 저녁이니 어디에 하소연을 하겠는가?
캠핑하는 맘으로 하루 저녁을 보냈다.
그나마 옆집에 계신 목사님께서 침낭이라도 빌려주시지 않았다면 -_-;;
RA로 있는 Ben도 문열어 주고 당혹스러워한다.
내일 housing office에 가서 말하라는 짧은 정보만 주고 사라졌다.
이런 당혹스러움을 안고 하루 밤을 지내고 housing office담당자를 만나 방을 바꿔달라 요구했으나 그 방 type은 없단다. 그러니 수리가 끝날 때까지 게스트 하우스에 있으라나 뭐라나. 캠핑보다는 낫다 싶어 게스트 하우스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짐도 풀수 없어 난민캠프 수준의 생활이다.
재미야 있는데 이게 왠 고생인가 하는 생각에 미치면 우울해 진다.
그래도 아이들이나 아내가 즐거워하니 마음은 가볍다.
앞으로의 정착 준비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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