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정치학 (반양장) - 10점
존 하워드 요더 지음, 신원하.권연경 옮김/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읽다가 내려놓기를 두번이나 하면서 읽은 책. 물론 책이 재미가 없다거나 따분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이 책을 읽을 무렵은 늘 갑작스러운 일들이 생겨서 피치못하게 읽기를 중단해야 했다.
겨우 완독한 것도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지 모른다는 부담 때문이다. 읽으면서 또 읽으리라는 다짐도 빼놓지 않으면서 말이지.

제목과 관련하여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예수에 관해서야 할말이 따로 없고 "정치"부분에 있어 통상 이 단어가 그려내는 심상보다는 더 포괄적인 의미로 요더는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하면서 이루어지는 역학 전체를 일컫는 개념으로 전제하고 요더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독교 윤리학에 있어서 윤리적 기준이 "예수"일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그것이 그리스도인이건 비그리스도인이건 상식처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계의 이야기는 '아니다'였다. 많은 이유들로 인해서 예수의 묵시적 비전이 2000년 이후의 삶 속에서는 윤리적 기준으로 작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보편적 이성이나 합의를 통한 윤리적 가치에 기초하여 기독교 윤리를 구성하였다. 웃기다고 말하겠지만 학자들이 바보라서 그런 주장들을 쏟아냈을까? 그러면 왜 학자들, 소위 윤리학자들이 기독교 윤리에서 예수를 포기했던 것일까? 성서학자들이 성서를 연구하는 방법론적 전제를 고스란히 수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자기 분야가 아닌 경우, 각 분야의 전문가가 이야기하는 것들의 신뢰도는 어느때보다도 높지 않은가! 신약성서학자들의 예수 읽기가 잘못된 전제 위에서 골로 가는 결과를 내놓으니 그 전제와 결과를 가지고 윤리학을 구성했을 때의 상황은 상상에 맡기겠다.

요더는 신약학자들의 전제를 수용하기를 잠시 내려놓고 본인 스스로가 성서를 읽기 시작한다. 누가복음의 내러티브 속에 있는 예수의 모습과 십자가의 삶을 주석하며 예수의 십자가가 기독교 윤리의 근거이자 원리임을 천명하였다. 새로울 것도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대부분 기독교 윤리라고 하면 산상수훈의 말씀, 십계명의 문자적 준수를 윤리라고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바리새인이 다른 사람들이 바리새인인가?

요더는 십자가의 고통과 현대 사회의 최우선 가치인 '효율성'을 대립시킨다.
십자가는 과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효율적'이었는가? 요더는 이 질문 안에 있는 전제처럼 비폭력 무저항이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화가 되었을 때 이미 그것은 십자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십자가는 목적도 포기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에 올곧은 순종, 그 결과와 목적을 잊은 하나님의 신실성에 기반한 순종으로서만 질 수 있는 것이다.

교회가 사회개혁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의식 자체가 역사를 움직이는 운전대를 교회가 쥐려는 현대의 힘의 논리의 다름 아니라는 비판은 새겨야 할 부분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을 때 그 행위자체가 로마와 유대 권세자들에게 도전이었듯, 교회가 하나님의 신실함에 기초한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 그 자체가 바로 이 땅의 권세자들에 대한 도전이 된다. 관건은 교회가 교회되는 것!

바로 이 단순한 진리가 신약성서 전체를 관통한다는 것을 보여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십자가의 길이 보여주는 폭발력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강추.

후기.
1. 서신서 속에 나타난 house code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현재적 질서를 그대로 인정하기를 촉구하는 부분은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2. 이신칭의의 새로운 조망
3. 세상 권세에 대한 극단적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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