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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 - ![]() 톰 라이트 지음, 노종문 옮김/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
이책은 제목 그대로 악의 문제를 다룬 신학책이다. 성서학자인 그가 넘나드는 신학적 사유와 그 깊이에 늘 놀라며 부러워 하고 있는데 이 책 역시 그만의 성서해석을 근간으로 한 악에 관한 문제를 개괄적이지만 통찰력있게 잘 정리해 주었다.
지난 세기에는 모멸감을 주는 악이라는 주제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9/11이 아닐까 한다. 더 이상 악은 철학자의 사변 속에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고 충격을 받게 되는 실재다. 라이트는 그간의 악의 문제는 해답없는 '기원'에 관한 문제 일변도였고 이런 사변적인 논의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악에 대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실재로서의 악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데도 소홀히 다루어진 이유는 진보 논리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유토피아와 같은 세상이 펼쳐 질 것이므로 과정에서 빚어지는 고통의 문제나 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세계관과 이원론적 세계관 일변도로 유아기적으로 악의 문제를 다루어 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전자가 헤겔의 변증법이 낳은 결과라 한다면 후자의 예는 9/11이후의 부시의 선택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떨어진 미사일이다.
그는 이 악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서적 내러티브 속에 나타난 세계관과 그에 입각한 우리의 행동에 있다고 단언한다. 성서는 악의 기원에 대해서 침묵한다. 그러나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악이 과연 실재하며 우리의 삶과 멀지 않다는 것이다. 성서의 기본적 내러티브는 하나님의 창조로 부터 시작한다. 창조세계 속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책임적 존재로 살아가도록 지으셨는데 악을 극복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오히려 악을 나르는 통로가 되어 버렸다. 악으로 더렵혀진 창조세계를 원래의 계획대로 회복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정의다. 의인은 상주고 악인은 벌주는 형법적 차원의 정의가 아니라 성서의 정의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악의 정의를 내려본다면 반 생명, 반 창조 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악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대안은 십자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악의 정복과 그 종국적인 미래를 믿고 그 미래적 삶을 현재화 시키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악은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소극적 의미보다는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미래를 현재화 시키기 위해 부름받은 공동체이다. 창세기에서 주어진 책임적 존재로서 다시 살아가도록 초청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악을 걷어내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가치를 '용서'라 한다. 용서는 관용과 다르며 포용성과도 구별되는 것으로 절대로 악을 유야무야 시키는 행위가 아니며 철저하게 악을 규정하는 단계를 거쳐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라고 말한다.
용서에 관한 그의 주장의 대부분은 미로슬라프 볼프(Miroslav Volf)교수의 『배제와 포용』에 근거한다고 하니 독서리스트에 한 권이 더 추가되었다.
전체적인 글의 요지는 What 이 아니라 How에 대해 관심가져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해결방법으로 하나님 나라의 현재화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현재화가 구조적인 악에 대한 문제나 그가 말하는 자연적인 악(해일, 지진, 화산폭발)의 문제와 닿아있지 않아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사실 악의 문제가 표면화 되는 것은 집단 광기의 역사 속에서가 아니던가? 그래서 오히려 시원하게 아우슈비츠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혹은 자연적인 악의 문제에 대한 성서적 이해를 살피는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강점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사실 how에 대한 관심 이외에는 미로슬라프 볼프의 책 한권이 오히려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의구심도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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