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

from Monologue 2006. 9. 5. 23:11
누군가의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힘이 이름이 아니던가.

마침내 별이의 이름이 99.9% 결정 되었다.(99.9%라 함은 아직 출생신고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니까^^)
처음에는 우리말 이름으로 지어볼까도 생각해 봤는데
막상 돌림자를 사용하지 않으려니
내 뿌리를 잃는 묘한 느낌에 사로 잡혀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다고 내가 이조시대를 주름잡던 유교적 이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유교적 이상의 핵심이라 할 권위의식에 대해서는 무장해제를 하고 있는 사람중에 한 사람이니 나이니까...

지금의 내 머리 속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생각들을 들여다보면
"나"를 지금 있게 한 나의 조상들에 대한 감사와 나를 지탱해 온 큰 고목의 가지 가지와 마디마디에 대해서 돌아보고 생각해 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기독교적인 배경에서 자란 탓에 우리 것 혹은 조상에 대한 생각 자체를 죄악시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정말 어설픈 신앙의 태도이고 말그대로 유아적인 태도라는 생각이 들고
나를 있게 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 너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들로 부터 이어져 내려와 나를 묶는 것이 그나마 돌림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본의아니게 "일서"라는 이름 이외에 "바울"로 불렸던 유년시절과 청소년시절을 떠올려보면 지금 내가 "일서"로 불리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성서적 이름이 성서적 인물의 성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아무리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한자로 이름을 짓지 않는 것처럼
우리네가 아무리 신실한들 그네들의 이름을 가져와야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소리와 글자로 얼마든지 성서적 이상을 담는 작명이 가능하고
나를 있게 하기 위해서 내게 주신 조상에 대한 감사를 미력하나마 돌림자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되도 않는 소리를 해보는 거다.

나의 사고가 촌스럽다고 하는 사람의 손가락질이 있어도 나는 내 길을 가련다.
그런 촌스러움을 꼬집는 손가락질 자체가 이미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절대적인 사고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는 되먹지 못한 것이라고 입바른 소리도 내뱉어 본다. 물론 같은 논리가 내게도 해당되겠지만...


어쨌든 아들이 자라서 자신의 이름이 지어진 배경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 녀석이 이런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즈음일 것이라 기대하면서 별이 아닌 "찬빈"의 이름을 적어본다.

기릴 "찬" 빛날 "빈"

하나님을 예배하고 빛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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