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 김에 책꽂이에 꽂힌 스캇 펙 교수의 책을 몽땅 읽어보자고 맘 먹고
녹록치 않은 두께의 두번째 책을 열었다.


전작인 "아직도 가야할 길(The Road less Traveled)"에 이은 후속 성격을 가진 책이다.
원제 "Further along the road less traveled"을 보면 분명히 이 책의 정체를 감지할 수 있다...^^


전작과의 연관성을 고려하면
이 책은 전작의 마지막에서 거론한 인간성장의 영적 측면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라 하겠다.
또한 인간의 영적 측면, 혹은 영성적 측면을 간과한 것이 현대 정신분석의 큰 실수라고 그는 말한다.


본서는 크게 3가지 주제로 대별되는데
첫째는 인간성장의 주제를 심화시키고
둘째는 너 자신을 알라는 테마로
마지막으로는 신으로 가는 여정에 대하여 기술한다.


인간성장은 이미 전작에서 다룬 바 있지만
특별히 본서에서는 인간의 고통의 문제와 성장의 관련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고통은 성장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거다.
C.S.Lewis와 참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스캇 펙 스스로도 루이스로 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고통가운데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고통은 무엇인가?


바로 죽음이다.


스캇 펙은 죽음이 어떻게 인간성장을 위해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는지를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한다.
2000년전의 철인 세네카의 말을 옮겨본다.
"삶 전체를 통해서, 사람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인생을 통해서 죽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나르시시즘에서 오는 죽음에 대한 회피가 죽음에 대한 순응으로 변화를 할 때 우리는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나르시시즘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변화를 거부하기 위한 나태함, 게으름과 두려움으로 부터다.


성장은 바로 이 두려움과 게으름을 떨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이 일관된 그의 주장이다.


둘째로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델포이 신전의 기둥에 새겨진 옮겨 일약 세계의 스타덤에 오른 명문!
왜 신전 기둥에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을까?를 고민해봤다면
나 자신을 알아가는 작업이 단순히 유물론적인 정신분석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초두에 언급하고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지식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이끈다는 말과도 공명하는 이 문구는 사실 장난 스럽게 건네기에는 심오한 면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정신분석이 인간 본성에 내재한 신에 대한 열망을 간과한 채 치료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어불 성설임을 고집스럽게 주장하고 있다.
사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자아에 관한 지식의 괴리는 정신분석에 종사하는 치료자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소위 신앙인들의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을 마치 외계의 별세계에 보좌에 앉아계신 할아버지 쯤으로 생각을 하니
당연스레 나에 대한 지식, 자아에 대한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나아간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정신병자라고 낙인을 찍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신으로 가는 여정은 정신분석에서 간과한 인간의 영성적 측면과
교회가 간과한 자아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기 위해 다면적 존재로서 인간을 그리고 있다.
그야말로 도그마로 화석화된 인간론을 가진 교회로 인해
"과학"이라는 종교아래 자행하고 있는 인간의 영성적 측면을 무시한 심리학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본래 주신 고향에 대한 향수와 융의 표현대로 자아 실현(Individuation)에 대한 씨앗이 거세된 채로 살아온 우리다.




도그마로 굳어진 문자주의에 빠진 신앙이 아니라
기독교의 본질인 역설을 용납하는 높은 차원의 신앙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들의 신론보다 하느님이 더 위대하다는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p.217).






책에서 인용한 융의 고백이 맛깔스러워 옮겨본다.
"뭔가 진실이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실체적인 증거가 없다고 생각 할 때 우리는 '믿는다'라는 말을 씁니다. 그렇다면 나는 신을 믿지 않아요. 난 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요."(2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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