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ctim of love"라는 원제를
"사랑이라는 이름의 중독"이라고 다소 저돌적으로 번역한 것도 디자인에 한 몫 단단히 한다.
사실 번역이 제대로 된 책이라면
번역 제목이 더 책의 내용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책의 구입 동기부터
누구의 서평에 의지하지도 않고
깔끔한 내 취향의 디쟌에 잡아들고
다만 책방 아저씨의 "베스트 셀러는 아닌데 꾸준히 나가는 책"이라는 말만 다부지게 믿고
만원짜리 주고 샀다.
우리시대는 '무엇인가에 중독되었다'고 혹은 '미쳤다'고 할 때
본래적 의미는 잊고 긍정적인 의미로 읽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 공부에 미쳤다고 한다면
그는 공부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게 하며
누군가 일에 미쳤다고 한다면
다소 조소 섞인 말일 수 있으나 그의 일에 대한 열심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부러워 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비단 이러한 방식의 의사소통은 사물에 대한 사람의 집착에서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사람에 대한 집착에도 해당한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유행가 가사에서 들리는 "너는 내 전부다"라는 말은
"너"를 정말로 사랑하는 "나"에 대한 낭만적인 언어로 우리에게 각인되었다.
그러나 실제 관계에 있어서
너가 내 전부라면 그 관계는 건강한가?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관계(relationship)란
3개의 요소가 필요한데
"나"와 "너" 그리고 "관계"라 불리는 역학이 그것이고
각각의 요소가 어느 요소에 함몰됨 없이
유지될 때 비로소 건강하고 서로를 세우며 자라게 하는 관계가 성립된다는 거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자신을 함몰시키는 관계에 중독될까?
이책은 중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상담자의 사례를 몇가지 소개한다.
내담자의 면모를 훑어 보면 이 사람들은 무엇인가 어린시절 결핍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 결핍을 통해 발생하는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그들은 자신을 함몰시키며
상대방의 관심을 끌려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상대의 정체성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거다.
이렇게 중독에 빠져서도 중독임을 알지 못하는 이유가
앞에서 말한 사회적인 암묵적 약속때문이라는 거다.
사실 이 책을 읽다가 보면
나의 관계 모두가 중독처럼 보인다.
난 "네가 세상의 전부야"라는 사탕발림을 믿지 않는 이성주의자이지만
이 책에 나열된 중독의 증세들만 놓고 보자면
난 중독적 관계로 범벅이 되어 있다.
뭐 이쯤에서 태클을 걸자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중독을 보려다가
인간 삶 전체를 중독으로 몰아가려는 의기양양한 저자의 태도를 읽는다.
"난 중독이 아니예요!"-_-;;
물론 자신의 삶에 있어 중독적 관계를 돌아볼 계기를 주는 것은 참 좋았다.
갑자기 책을 읽다가
심리학이 본격적으로 학문적으로 논의되기 이전에
이런 중독현상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모든 것을 원인, 결과로 생각하는 서구적 이성을 기본으로
프로이트의 선구적 과업으로 이루어진 정신분석을 빼고나면
이 책을 쓴 화이트맨과 피터슨은 어떤 진단을 했을까? 하는...
물론 인간의 삶이 어느정도의 인과관계의 법칙에 적용받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정신분석을 통해 분석될 여지가 있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의 믿음은
인간은 그 이상이라는 거다.
왜냐하면 난 그렇게 창조되었으니까^^;
새롭게 관계를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은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그러나 사서 읽으라고 하면...음...
세일 20~30%받을 기회가 있으면 사서 보라고 해줄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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