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노년에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을 바치러 모리아산에 오른다.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도 잔인한데 직접 아들의 죽음을 불러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란 한걸음한걸음이 자신의 남은 생을 일년일년 지워서라도 아들을 살리고픈 심정으로 가득할 법하다.

물론 아브라함의 믿음을 어여삐 여기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아들을 내리치려 할 즈음 "짜잔~"나타나셔서 "너의 신실함을 이제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준비한 양을 대신 잡아 제사를 올리거라" 하셨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서는 "준비한 어린 양"이 바로 예수님을 예표한다는 것도 무수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러나 문득 창세기도 아닌 히브리서를 읽다가 쓸쓸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다.

노년에 얻은 아들, 그래서 이름도 "웃음"의 뜻을 가진 이삭을 바치라고는 했지만
모리아 산을 오르는 아브라함의 처절함과 괴로움을 아신 하나님,
그래서 칼을 들어올린 아브라함을 다급하게 불러 칼을 내려놓을 것을 명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은 아들도 살리고 대신 드릴 "어린양"도 받아서 기쁨이 충천했을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 2000년 전에 재현되었다.

그분의 아버지도 쓰린 맘을 안고 골고다를 걸었다.
아들의 손을 잡아 주고 싶었고 "십자가"를 지고 가며 쓰러지는 아들을 일으켜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 아들을 위해서는 준비된 "어린 양"도 없었다.

아브라함의 괴로움은 외면하지 못하셨던 정많은 하나님이
정작 당신의 아들의 괴로움은 가슴을 찢으시면서 외면해야 했다.

성경은 아버지의 괴로움을 하늘이 어두워지며 바람이 몹시 불었고 휘장이 찢어졌다고 표현한다.


찢어진 휘장사이로 열린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사랑의 길이다.
사랑은 내 마음을 찢는 데서 시작한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2004/04/27 00: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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