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순이 언니>이 후에 간만에 접한 공지영의 글이다.
소설이 아니라 기행문의 형식을 빌어 여성적인 섬세한 내면의 이야기를 듣는 사색집이다.
유럽여행 전에 접했으면 참 좋았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고
같은 하나님을 고백하는 신앙인으로 그녀의 18년간의 손바닥안의 외도가 내모습과 같이
내심 위로도 받았다.
아울러 여행이 주는
말의 그릇에 담을 수 없는 의미들을 일깨우는 그녀의 필력에 다시 한번 깊은 사랑에 빠질 듯 현기증도 일었다.
여행을 하고 난 후의 느낌.
유럽의 그것은 특별히 더한 면이 있다.
역사적 유물과 그림과 같은 풍경을 노칠새라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마치고 나면 결국 터덜거리며 베낭 메고다니며 만난 사람들과의 기억만 남는다.
공지영은 수도원 기행을 통해
18년간의 외도를 보속하려 했는지 모르지만
그 18년의 세월이 공지영을 만드는 하나님의 기다림의 공간이요 창조의 공간임을 마지막 장을 덮으며 느낄 수 있었다.
그런거다.
그래서 미련해보이고 어리석어 보여도
"죽었다"고 사형선고 받은 하나님께
"아버지의 투사"라고 한껏 우쭐하게 분석하여 떠들어 대는 이들의 소리를 막고
투정을 부리는 거다.
그게 신앙이다.
이런 신앙의 감성을 공지영은 안다.
도그마보다는 이런 감성이 지금의 신앙을 담아내는 그릇이 아닐까?
군데 군데 주옥처럼 박혀 있는 공지영의 삶이 우려낸
통찰들이 있어 표시라도 해줄까 했는데
알량한 자존심에
외워버려야지...하고선 책장을 넘긴게 탈이었다.
어디있는지 모른다.
18년을 모른 채 살았다고 고백하는 공지영이지만
구절구절 그는 18년의 세월동안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짝사랑하고 있었구나...하는 인상을 받았다.
"행복"과 "항복"의 한끝 차이의 단어가 갖는 엄청난 의미도 아는 그녀다.
수도원 가운데 특별히 봉쇄수도원에 계신 수녀님들을 뵌 후에 적은 그녀의 글을 보며
"헌신"이라는 단어가 나 입에서 너무 싸구려가 되지 않았나 돌아보았다.
물론 봉쇄수도원 안에서의 수련만이 헌신은 아니지만
나는 내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때깔이 좋아 보이고 싶어 "헌신"을 남발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30여년을 이국만리의 땅에서
세상 구경할 수 없는 봉쇄 수도원의 생활을 통해
수녀님들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얻으셨을까?
피붙이도 아니고 생김이 같다 하여
공지영을 보고 20여년 가족, 친지도 다녀가지 않은 곳에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는 수녀님은
분명 소녀셨다.
그리고 나와 같은 육과 정을 가진 사람이셨다.
그러나 나와 다르다.
그래서 부끄러운 거다.
이 부끄러움이 찰나가 아니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후기에 언급한 분들을 보니 성공회대 정양모 신부님이 계신다.
한 때 신부님의 구수하고 독설섞인 성경수업에 매료된 적이 있다.
그 때도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다니시는 할아버지 셨는데
지금은 어떠하실까? 궁금하다.
그분들이 포기함으로 얻는 것과 내가 포기함으로 얻는 것.
그것이 순수는 아니어도 적어도 자기애는 극복된 것이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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