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면서 부모의 눈맞춤에서 시작되는 "주목"에 익숙해져 간다.
내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어찌보면
어릴 적 배운 이 눈맞춤 도둑질 때문이 아닐까.


당연시하던 눈맞춤이 스러져 갈 때,
식상해진 눈맞춤에서 새로운 대상을 찾아 앉아 있던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
내가 마주치게 되는 것은 나에게 눈맞추지 않는 세상에 당황함 뿐이다.


그 중 갸륵한 심보를 지닌 사람은 사력을 다해
당황함을 안겨준 세상에 보란듯이 뻑적지근한 일들을 벌여
억지로라도 눈맞춤을 이끌어 내고,
대부분의 소심쟁이들은
그저 눈맞추지 않는 세상에 대한 넋두리와 두려움만 갖고 잔뜩 웅크린다.


그래서 눈맞춤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을 시기한다.
그러나 정작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그런 눈맞춤을 받지 못하는 나다.
최소한의 긍휼이자 자비가 나에 대한 미움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가진 자에 대한 투사를 통해 증오로 풀어내는 거다.


이런 같잖은 정신분석으로도 이해되는 눈맞춤에 대한 유야적 열망은
알면서도 사그러들지 않는 역설이다.


변두리적 삶을 살아가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소심쟁이들이 질펀하게 주저 앉는 곳이 변두리이며
둘은 가진 자들이 서식하는 알맹이 땅에 대한 미련, 그들이 받는 눈맞춤에 대한 미련을 깨끗히 버리고,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살게 되는 변두리적 삶이다.


낭만적인 나로서는 후자이고 싶은데
변두리적 삶의 유형이 그 두가지라고 해도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한 다를 바가 없기에
춥고 배고프다는 사실에는 다를 바가 없기에
변두리에 살기 두렵다.


모르겠다.
후자를 선택해서 살아간다해도
내 선택으로 변두리적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용을 쓰며 또 다른 눈맞춤을 구애할런지...


분명 이러하든 저러하든 눈맞춤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면,
기왕지사 도토리 키재기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한테 눈맞춤 받기를 원하지 말고
내 평생을 "순간"의 빛안에서 보고 계신 그분과 눈 마주치자.
원하는 것이 눈맞춤이라면
그 분에게서 내 눈을 떼지 말자...
그 분은 재채기 하시는 동안도 고개를 돌리지 않을테니...


잡설...
삼단논법도 ABC도 모르는 잡설...
이래서 12시가 넘으면 악령이..활..동을...한다는 거..다...

2005/06/25 01: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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