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seotaiji

from Monologue 2006. 6. 16. 19:02
"서태지" 90년대의 문화코드로 손색이 없는 고유명사다.

개인적 음악 취향일 수 있으나 그의 노래나 가끔 듣는 신해철의 노래는 제작 년도에 관계없이 늘 새로움을 안겨준다.

33살의 원숙미를 담은 7집을 들고 그가 돌아왔다.

그의 말을 빌면 "돌아왔다"는 표현이 그에게는 가당치 않다고도 한다.

그는 늘 음악 곁에 있었으므로...

10년이라는 세월이면 강산이 변한다고들 한다.

요즘같은 세상은 변환주기가 더욱 짧아졌음에 의의를 제기할 사람 또한 없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우리의 문화코드이다.

내가 그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은 문화대통령이라 불리는 그의노래를 찬양하고 싶음도 아니고

몇몇 사람들로부터 질타받고 있는 그의 비즈니스 마인드도 아니고

다만 그의 프로페셔널리즘이다.

작년 한해는 벅스뮤직으로 붉어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관한 적법논란으로 시끄러웠다.

물론 배경에는 인터넷업체와 음반업계의 밥그릇 지키기가 있음이 자명하다.

음반업계의 불황을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mp3의 불법 유통의 탓으로 돌리고

음반업계는 그들의 기득권을 십분발휘, 철퇴를 내리쳤다.

이제 신천지가 올것이라는 기대와 인터넷에 빼앗긴 밥그릇을 찾으리라는 장미빛 청사진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나 그 장미빛 환상은 실현될 기미 없이 그저 "꿈"으로 남았고

같은 현실을 대면하고 "서태지"는 정면돌파를 선언하고 부딪혔다.

불황이라고 하던 음반업계, mp3때문이라고 비난 하던 그 현실속에서

그는 음반업계가 "꿈"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청사진 그대로를 실현해내고 있다.

그의 7집 mp3를 구할 수 없을까?

물론 아니다. 이글을 쓰고 있는 나도 다운 받은 12곡의 7집을 듣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앨범을 구입하지 않을 거라 생각마시라.

모르긴 몰라도 서태지 광을 자처하는 이몸의 동생이 이미 포스터와 앨범을 구입했음이 확실하므로.

다시 그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의 앨범에 담긴 곡들은 흔히 시끄러운 음악들이다.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노래방 마이크를 잡고 눈을 지긋이 감을 수 있는 곡들도 아니고

홍대앞 클럽이나 가서야 들을만한, 아니면 이어폰이나 끼고 들을 법한 곡들이다.

그러나 대중은 열광한다.

무엇이 그토록 그의 음악에 열광케 하는가?

바보가 아닌 대중이 그 음악에 담긴 그의 노력을 읽어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음반업계의 상황을 대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것때문에, 저것때문에 안돼."

그리고는 사용하는 것이 이미 가진 "기득권"으로 약자의 어깨 밟기.

인류가 이 땅에 생겨나고 계속되는 악순환이 이런 파워의 고리가 아닐까생각한다.

서태지가 되자.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혼을 담아내는 전문성만이 기득권의 칼끝을 들이대는 시정잡배들의 고리를 끊고

청사진대로의 세계를 만들어갈 힘이다.


2004/01/29 04: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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