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르칠 수 있는 용기 - ![]() 파커 J. 파머 지음, 이종인 옮김/한문화 |
올 해 초에 파커 파머의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읽으며 헤매던 기억이 생생해서 다소 주저함으로 읽은 책인데 미리부터 겁을 먹어 그런지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던 책이다. 전작보다 10여년 후에 쓴 책이라서 쉬워진 건지...
전체 내용은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에서 드러낸 교육 원리들을 구체적으로 해설한 듯한 느낌이 든다.
왜 가르침에 있어 "용기"가 필요할까?
가르침과 배움의 현장은 온갖 공포로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을까 싶고 학과 지식이 없다는 비판을 받을까 싶고 지루하다는 비판을 받을까 싶고...이것은 학생 입장에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포장된 권위를 가지고 아이들을 억압하는 선생님에 대하여 공포를 갖기 때문에 그들은 '침묵'으로 선생님의 가르침에 응답한다. 이 정도의 공포는 현장에서 당연한 것이라고 치부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파머는 그 공포에 대한 두려움이 진정한 교육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공포는 가르치는 자의 내적 분열을 조장하고 내적 진실과는 관계없는 연기자로 강단에 서게 한다는 것이다. 내적 진실과 외부적 표현의 간격이 넓어질 수록 우리는 지칠 수 밖에 없고 처음의 열정이 식어 냉소주의자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파머는 과감하게 자신의 공포를 인정하라고 도전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공포를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우리의 정체성과 성실성이 강화되고 학생을 대상으로 인식하는 객관론적 교육의 허상을 부수고 관계적인 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적 지식(relational knowing)은 이제 가장 객관적인 학문이라고 하는 순수과학에서조차도 주창하는 인식론이다. 가르침과 배움의 공간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참여"로 상호의존성 및 상호연결성을 바탕으로 한 진리의 커뮤니티여야 한다. 교사의 열정은 학생에게 향하는 것도 아니고 교육 자체에도 아니고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야기의 주제에 맞추어져야 한다. 주제를 그 공간에 한 가운데 둠으로써 교사를 포함한 학생들은 주제 중심의 커뮤니티로 연결되고 상호간의 소통을 통해 교육 공간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제에 대하여 객관적인 지식을 가능한한 많이 습득하여 이것을 단순히 전달하려 하는 객관주의적 교육 방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교사로서의 공포, 두려움을 인정하고 "함께" 공간을 창출하는 관계적 모델의 예가 된다. 이 모델의 실제적인 예를 파머는 교회라 한다. 하나님이라는 영원한 주제에 교역자와 신도들이 함께 헌신하며 주제에 대한 논의와 투신을 함으로써 공동체가 형성되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델이 학교 현장에서도 가능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파머의 주장이다.
이런 교육의 시작이 바로 가르치는 자의 내면을 살피는 것이고 자기정체성과 성실성을 회복하는 일이며 이를 도울 수 있는 것이 교사 커뮤니티 안에서의 소통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상황은 교사 커뮤니티 조차도 경쟁관계로 엮여 있어 가장 관계적 소통이 활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기'가 요구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테크닉의 전수가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서 대처방안이 아니라 두려움을 가진 내가 수용되고 용납되는 교사 커뮤니티가 나의정체성과 성실성을 강화시키며 강화된 정체성을 통해서 내적 진실과 외부 현실의 간극을 좁혀보려는 시도가 생기고 이 시도가 교육개혁의 작은 움직임이 된다고 말한다.
제도 개선을 통한 교육 개혁이 얼마나 쓸 데 없는 일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소위 전수받은 테크닉이 내가 처한 상황에서 그다지 소용없는 일임을 깨닫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교사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연기'가 아닌 참여적 공간으로써 가르침과 배움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참 교육 개혁의 실천이고 진보이다.
얼개야 이렇다 치고 본문 구석구석마다 우리의 현장을 꼬집는 그의 통찰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 얼마나 먼 길인지 알게 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한다고 파머는 말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지성이 아니라 감성이 요구되고 영성이 포기되지 않는 교육의 길이다. 주제에 대한 경이를 회복하고 교육 주체가 두려움을 인정하고 서로를 향한 의존성을 키워갈 때 진정한 교육은 이루어질 수 있다. 꼼꼼히 읽으며 곱씹어도 좋을 만큼의 내용의 깊이와 통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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