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스웨터블루 스웨터 - 10점
재클린 노보그라츠 지음, 김훈 옮김/이른아침

제목만 보고 이게 무슨 책일까 하고 추측해 보았다. 부제로 엮여 있는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에 다리 놓기"와 제목과의 연결을 도무지 상상해도 손톱만큼의 개연성도 떠올릴 수 없으니 무작정 읽어 볼 수 밖에...
그래도 블루스웨터의 정체를 저자는 비교적 초반부에 알려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여기서 알려주면 소위 스포일러성의 글이 되어버리니 궁금증만 잔뜩 부풀려놓고 입 닫고..ㅋㅋ

최근 읽어낸 몇권의 책이 모두 가난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어서 이 책 역시 같은 연장선 상에서 넘나들며 가난에 대해서 풍성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저자 노보그라츠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몽상가처럼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다짐만 가지고 아프리카개발은행의 보직을 받고 아프리카에 가서 사람을 알아가고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체이스맨해튼은행과 같은 출세보장, 인생대박을 가능하게 하는 자리를 스스로 버리고 "개고생"을 선택한 뚝심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범인들은 출세와 개고생 사이에서 예외없이 출세를 선택하며 출세를 위한 노력이 정당하기 때문에 사실 개고생을 하며 일으켜야 할 세상의 음지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출세와 부가 마땅한 노력의 댓가이듯이 가난 역시 그들의 태만의 댓가일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라도 이렇게 생각하며 다른 대륙에서 오늘 이시각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별반 죄책감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가난은 개인의 태만의 결과라고 하기에는 지금의 상황은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한 가난이 대부분이며 그 가난 역시 우리의 부로 얼마든지 구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개고생을 택해 "의미"를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노보그라츠는 바로 이것을 실행한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그의 평생은 분명 자본주의가 뱉어내는 부를 즐기기만 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눈물겨운 도전이고 이 세상이 여전히 살만한 세상이라는 안도를 느끼게 한다.

몇해전 "전략적 사회 공헌"이라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 사회 공헌을 전략적으로 한다는 말인데 이 표현의 의미를 듣기 전에는 '전략'이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 뉘앙스 때문에 사회 공헌이 상당히 밝은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싸잡아 또 기업이 장난질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 공헌을 할 때 무작정 할 것이 아니라 그 공헌이 보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이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상당히 혁신적인 개념임을 듣고 무릎을 쳤다.

노보그라츠는 단순한 구제나 자선사업의 한계를 분명히 보았고 자선사업의 대상이 수동적인 수혜자에서 능동적인 창조자로 만들어지게 하는 시스템을 찾아 이를 실제로 이루어낸다. 그 열매가 바로 어큐먼펀드다. 비영리 펀드...이 펀드의 자리는 자선사업과 수익사업의 중간 자리에 위치한다(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고).

펀드를 조성해서 이를 투자할 때 투자처가난을 단순 구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사업을 벌이되 자본조달의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다. 그게 기존 상업적 펀드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상업적 펀드가 담보부족이나 수익성 보장을 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투자를 꺼리는 회사들이 이들에게는 투자처가 된다는 것이다. 이 투자를 통해 공익성이 강한 기업이 사회 취약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가난을 구조적으로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되는 선구조를 만든다.
이론적으로만 들어도 이상적인 이 실험이 그녀의 손에 의해서, 그녀의 뚝심에 의해서, 또 뜻을 함께 하는 많은 동료들의 도움을 통해서 실제가 되었고 오히려 기대하지 못했던 수익을 가능하게 하는 캐쉬카우가 되었다.

그녀가 기대하는 바는 한가지다.
지금 지구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가 연대의식을 회복해야 하고 공동체로서의 개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의 정의에 기대어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 것을 촉구한다.

르완다의 인종학살의 현장에서, 파키스탄의 지진 속에서, 전기도 들어가지 않는 인도의 한 촌락에서, 그녀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의미와 존엄을 세우고 일구는 일에 지금도 헌신하고 있다.
50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 속에 담겨진 그녀의 족적은 감동을 넘어선 숭고함이 서려있다.

천박한 자본주의가 양산하고 있는 가난한 우리 이웃의 한숨을 외면 할 수 없는 윤리적 민감함이 내게 있어야 할텐데...

한걸음 한걸음 "의미"의 행보를 하다보면 65억의 모든 사람들이 존엄한 자신의 가치를 감사하며 누리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20대의 꿈을 다시 생각하게 한 아름다운 책이다.

사족: 한비야의 책들과 함께 보면 더욱 다이내믹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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